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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성의 비극, 아름답고 위험한 광기 - <조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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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성의 비극, 아름답고 위험한 광기 - <조커>

크리스탈 크리스 (조은별) 2022. 6. 20. 08:31

토드 필립스 - <조커>

  DC코믹스의 대표적인 슈퍼빌런, 배트맨의 숙적, '조커'. 본작은 이 조커의 탄생을 그리는 단독영화입니다. 기존 시네마틱 세계관과는 별도로 보는 게 옳을 것입니다. DC 레이블의 그래픽노블처럼, 조커라는 캐릭터에 대한 하나의 해석이라고 보는 게 타당하죠. 코믹스 영화 최초로 3대 영화제 중 하나인 베니스 영화제 경쟁부분에 진출했고,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수상했습니다.

  본작에서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상승과 하강의 이미지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을 연상시킵니다. 사실 영화 전체적으로도 <기생충>과 닮은 부분이 많습니다만(스타일은 많이 다릅니다). 우선 계단이 지속적으로 등장합니다. 아서가 집에 가려고 오르는 계단. 해고당하고 나올 때 춤추며 내려오는 계단. 조커로서 머레이 쇼에 나가기 위해 집 나설 때 춤추며 내려오는 계단. 올라가는 아서의 모습은 힘겹고 지쳐 보이지만, 내려올 때의 모습은 경쾌합니다. 아서는 일기에 이렇게 적습니다. '정신병의 가장 괴로운 점은 그렇지 않은 척해야 하는 것이다.' 어떻게든 사회의 일원으로 있고자 하는 아서는 괴롭고 힘듭니다. 하지만 있는 그대로 표출하고 타락해가는 모습의 아서는 점점 우리가 아는 '조커'의 모습을 드러내며 경쾌하게 즐거워합니다.

  '삶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요,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찰리 채플린의 대표적인 명언이죠. 본작은 직접적으로 채플린의 영화를 작중에 등장시키고 모던 타임즈의 OST 'Smile'을 사용합니다. 결정적으로 아서의 대사, '나는 내 삶이 비극인 줄 알았는데, 사실 코미디였어'를 통해 채플린의 말을 상기시킵니다. 이런 거리감에서 오는 비극과 희극의 연출은 작중에서 지속적으로 나타납니다. 아서의 엄마에게 토마스 웨인이 말하는 '지하철 살인사건'은 웃기지 않습니다. 웨인을 사랑하니까요. 하지만 아서에게는 웨인의 말이 더없이 어이없는 웃음거리입니다. 반대로 아서의 삶은 다른 이들에게 웃음거리가 됩니다. 아서의 우스꽝스런 모습을 머레이 프랭클린은 아무런 사전 동의도 없이 방송에 송출해서 역시 상류층의 웃음거리로 만듭니다. 스탠드업 코미디를 하는 작자들은 온갖 차별적인 발언을 일삼습니다. 유대인, 대학교수와 여학생의 성적 관계, 남녀의 섹스 등에 대고 그것들을 단순화, 일반화시키며 한낱 웃음거리로 만듭니다. 난쟁이 개리는 동료들에게조차 놀림거리입니다. 아서는 물론 관객들조차 이 장면에서 웃어대곤 하는데, 과연 자신이 개리와 같은 상황이라면 웃을 수 있을까요? 결국 이러한 희비극이 그 자체로 내포하는 뒤틀림 때문에 극 후반부에서 펼쳐지는 아서, 조커의 코미디는 이해하기 힘든 형태로 발현됩니다. 이 과정에서 불쾌감을 느끼는 관객도, 조커에 동조하는 관객도 생길 겁니다. 결국 마지막 장면에서. 아서가 상담의에게 자신의 조크를 당신은 이해 못 할 거라 말하는 부분은 조커 자신만의 코미디를 이해받지 못한다는 걸 깨달은 모습이라고 할 수 있지요.

  아서는 왜 엄마를 죽이고 옛 동료를 죽였을까요? 그들은 각자의 세계를 아서 자신에게 덧씌우고 강요했기 때문입니다. 총을 받기를 거절했음에도 억지로 쥐어주고. 그러면서도 책임에서는 회피하고. 자신이 믿는 착한 아들의 모습, 항상 행복한 '해피'의 모습을 강요하고. 그러면서도 등에 난 화상자국으로 대표대는 학대행위를 방치하고(물론 어머니 역시 정신병이 있기에 그랬겠지만요). 결국 아서는 이들을 죽여버립니다. 아서의 웃음은 불안정하고 압박적인 세계를 마주할 때 터져 나옵니다. 이는 분명 병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기도 할 겁니다. 하지만 아서 자신에게 있어서는 그게 병이 아닙니다. 사회에서 그걸 병으로 규정하고 있을 뿐이죠. 아서에게는 그저 그렇게 태어난 본연의 자기 자신입니다. 일종의 퀴어적인 부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자신을 추적하다 지하철 안의 광대 무리에게 두들겨 맞은 형사들 앞에서, 조커는 춤을 춥니다. 그리고 가면을 벗어 쓰레기통에 버립니다. 결국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드러냄으로써 빌런 '조커'가 탄생하는 것이죠. 

  본 영화는 온전히 일인칭에 가까운 제한적 삼인칭 시점으로 전개됩니다. 아서가 겪는 환상들, 고통과 불행들을 우리는 바로 옆에서 지켜보게 됩니다. 결국 아서의 삶을 가까이에서 보는 거죠. 그리고 그 삶을 비극으로 인식하게 됩니다. 정말이지, 조커에게 몰입할 수밖에 없는 형태의 연출이에요. 혼란스럽고 폭력적인 스크린을 바라보면서도, 저는 조커의 광기가 아름답게까지 느껴졌습니다. 저도 모르게 조커를 응원하고 있었고, 그래서 당황스러웠습니다. 이 영화는 굉장히 잘 만들었지만, 그렇기에 위험한 영화이기도 합니다. 그야말로 슈퍼빌런 '조커'의 명성에 걸맞은 작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마무리를 하면서 적자면, 본작에 약간의 개연성 문제가 없다고는 못할 것 같습니다. 사실 개연성 자체보다도 설명이 부족한 채로 상황을 전개해버린 부분이 좀 있었죠. 그럼에도 정말 매력적인 캐릭터 해석을 보여준 영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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