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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파도, 쓸쓸하고 아름다운 후일담 - <밤의 해변에서 혼자>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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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파도, 쓸쓸하고 아름다운 후일담 - <밤의 해변에서 혼자>

크리스탈 크리스 (조은별) 2022. 6. 20. 09:23

홍상수 - <밤의 해변에서 혼자>

  홍상수는 그 사생활로 입방아에 오르내린 적 있는 감독이다. 그런 한편으로는 상당히 실험적인 영화를 찍는 예술영화 감독으로서의 이름도 높다. 그의 2017년 작 <밤의 해변에서 혼자>는 김민희가 주연이라는 점, 영화의 내용이 유부남 감독과 여배우의 사랑을 다룬다는 점에서 여러모로 화제가 되었다. 필자는 홍상수 영화를 이번에 처음 봤다. 매력적이었다. 홍상수 영화는 지루하다, 한 편 보고 나면 다른 건 볼 필요 없다, 그런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하지만 필자는 시간이 된다면 비록 유사한 서사의 반복이라 할지라도 홍상수의 영화를 또 볼 지도 모르겠다. 본작 내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들은 자전적인 서사로 볼 여지도 있지 않는가 싶다. 사실 한국에서 영화를 만드는 한국 감독이 이렇게 담담하게, 논쟁을 불러올 수도 있을 법한 자기 이야기를 펼쳐나가는 모습을 필자는 처음 봤다.

  김민희가 분한 ‘영희’는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기다리지 않겠다고 말하다가도 그립다고 말하고, 담담하게 말하다가도 갑자기 거칠게 소리를 지르고, 그러다가도 또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모순과 불안, 사랑. 많은 감정들을 그 안에 담고 있는 모습은 영화의 결을 독특하게 만든다. 스크린 속의 영희가, 그저 인물이 아닌 한 명의 사람처럼 느껴지게 만든다. 주변에 포진한 평범한 인물들이 영희의 그런 모습을 은언 중에 부각한다.

  영희는 1부에서 해외에 나가 있다. 2부에서 한국에 돌아온다. 1부에서 검은 옷 입은 남자가 접근하자 얼른 떠나자고 말했던 영희는, 2부에서 호텔 창문을 닦고 있는 검은 옷 입은 남자에게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는다(주변 인물들의 반응도 마찬가지다). 결국 두 사람의 사랑에 간섭하는 모든 것들에 당사자들과 주변 사람들은 갈수록 체념하고, 사생활이 대놓고 침해당하는 상황조차 일상으로 받아들이고 만다. 검은 옷 입은 남자도 그들의 무관심에 체념하고 이윽고는 그냥 바다만 바라본다. 그러니 결국 당사자들이 받은 고통은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영화는 묻는다.

  사랑이란 과연 어떤 것일까. 우리는 사랑하고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들일까. 다들 추한데 더 추하고 덜 추한 게 있는 것일까. 사랑은 초월일까, 후회일까, 그냥 아무것도 아닌 것일까. 본작이 던지는 사랑에 대한 질문들은 어쩌면 홍상수의 변명일 수도, 호소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작중에서 영희가 서있는 해변가의 쓸쓸함, 혼자서 노래 부르는 고독함, 아니면 감독의 후회도 계속하다 보면 달콤해지더라, 하는 말은 세상 어디에나 널린 보편적인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결국 본작이 하고 싶은 말은 그런 것들 이리라. 격정적인 사랑의 절정을 대놓고 보여주지 않아도, 그저 담담한 ‘이후’만으로도 이렇게나 가슴을 후벼 팔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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