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와 속박의 피아노 - <피아노>

제인 켐피온 - <피아노>

  제인 캠피온 감독의 영화 <피아노>는 1993년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작품입니다.

  에이다는 벙어리입니다. 자신이 어째서 말을 하지 못하게 되었는지 본인도 알지 못합니다. 19세기 말의 남성중심적, 가부장적 문화를 작중에서 지속적으로 보여주는 것과 함께 보면, 이는 사회가 여성의 '말'을 막고있는 시대 상황을 상징하는 것이죠. 입을 틀어막힌 에이다는 피아노에 의존합니다. 에이다가 자신이 말을 할 수 없다고 느끼지 않은 이유는 피아노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피아노는 에이다의 날개입니다. 자유이자 언어입니다. 하지만, 피아노를 치기 위해서는 공간이 필요하고, 그를 위해서는 돈이 필요합니다. 크고 무거운 악기이므로 옮기는 데에도 일손이 필요하죠. 피아노는 에이다에게 자유를 주었지만 동시에 에이다를 가부장적 권력에 복종하게 만들고 그 아래에 속박시킵니다. 에이다는 피아노를 얻기 위해, 남편과의 교섭으로 그것을 땅과 교환해 가져간 베인스라는 남자와 은밀한 관계를 맺게 됩니다. 에이다에게 피아노가 필요한 이유가 말을 할 수 없어서임을 상기한다면, 당연하게 말할 자유를 앗아가고 그것을 대신할 피아노를 위해 치러야 할 대가를 에이다에게 전가시키는 방식으로, 당시의 시대는 에이다를 억압한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베인스가 에이다에게 있어 자유의 동반자게 되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아이러니한 부분이기도 하네요. 몰론 이는 베인스의 깨달음이 있었기 때문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에이다는 미혼모입니다. 딸이 한 명 있어요. 이 딸 플로라는 어머니의 수화를 읽고 사람들에게 전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어머니와 함께 뉴질랜드의 미개척지로 와서, 플로라는 자연과 어울립니다. 원주민들, 동물들과 자유롭게 뛰돌아요. 하지만 나무에 대고 성교를 하는 놀이를 원주민 아이들고 하다가 새아버지 스튜어트의 호령을 받습니다. 이 장면 이후로 플로라는 엄마보다 스튜어트의 편을 드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스튜어트의 행위는 플로라에게 '자유의 부끄러움'을 주입시켰고, 플로라가 엄마의 자유로운 행동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계기를 만들어주지요. 그렇지만 엄마의 손가락을 잘라버리는 스튜어트의 잔혹한 행위 앞에서 두려움을 느끼고, 플로라는 스튜어트의 세계에서 탈출해 다시 자유를 되찾게 됩니다.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날개를 씻는 장면이죠.

  원주민과 함께 사는 베인스의 자유로움에 에이다가 끌리고 만 것도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릅니다. 베인스는 어쨌든 에이다가 피아노를 되찾는데 도움을 준 인물이가도 하니까요. 그 과정에서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에이다를 능욕한 것을 후회하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지요. 베인스와 스튜어트는 모두 가부장적 권력의 상징입니다. 스튜어트는 에이다를 아내로 들이고 자신의 세계에 귀속될 것을 강요합니다. 베인스는 에이다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미끼로 에이다를 성적으로 탐하죠. 결국 에이다가 스튜어트를 버리고 베인스와 함께 하는 것은 자유에 대한 동경이 그 기저에 깔려있어서이지 않나 싶습니다. 또 최소한 베인스는 에이다에게 행위의 대가를 제시했고, 온몸을 감싼 두꺼운 옷들을 벗겨줬으며, 하는 말에 귀기울이려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니까 말이죠.

  영화 후반부, 베인스와 에이다가 함께 배를 타고 떠나는 과정에서, 에이다는 피아노를 버리리고 말합니다. 베인스는 만류하고자 하지만 결국 에이다의 의지에 굴복해 피아노를 바다에 버리라고 하죠. 그때, 피아노를 묶어두던 밧줄에 에이다의 발이 걸려 바닷속으로 빠지고 맙니다. 바다에 빠진 에이다는 죽을 힙을 다해 묶인 신발을 벗어던지고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옵니다. 바다는 죽음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생명 근원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위에 적은 것처럼 피아노는 에이다에게 자유를 줌과 동시에 속박하는 물건이었습니다. 그런 피아노를 바다에 버렸으나 쉽게 자신과 때어놓을 수 없었고, 결국에는 생의 의지로 피아노의 속박을 떨쳐냅니다. 이 과정에서 옛 에이나는 죽고 새 에이나가 탄생했다고 봐도 될 것입니다. 이후 에이나는 피아노를 가르치며, 말을 배우려 노력하며, 스스로 자유를 향해 나아가는 삶을 살아가게 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