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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와 필요악, 책임에 대한 - <가버나움>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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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와 필요악, 책임에 대한 - <가버나움>

크리스탈 크리스 (조은별) 2022. 6. 20. 10:21

나딘 라바키 - <가버나움>

  <가버나움>은 나딘 라바키 감독의 작품입니다. 등장인물들을 현직 배우가 아닌 실제 난민들이 분했으며, 감독 본인은 변호사 역으로 등장합니다. 2018년 칸 영화제 심사위원상 수상작.

  ‘가버나움’은 성경에서, 멸망할 것이라 예언당한 도시입니다. 자인이 살고 있는 레바논의 시궁창 같은 상황과도 유사하지요. 신에게 버림받은 땅. 가버나움. 하지만 사람들은 신에게 기도하며 살아갑니다. 그리고 ‘자신을 낳았다’는 죄로 부모를 고소한 자인은, 자신은 행복하게 살고 싶었지만 신은 그런 걸 원하지 않는다고 증언합니다. 성경에는 부모가 빚을 지면 아이를 팔기도 했다는 문장이 있습니다. 이는 돈 때문에 어린 딸을 시집보낸 자인 부모의 모습과도 겹쳐지며, 현실을 고발함과 동시에 어쩌면 가부장적인 서사 성격을 가지고 있는 성경, 가망 없는 믿음과 신앙이 만드는 악의 대물림에 대한 비판이기도 합니다. 이것은 국가와 어른의 책임에 대한 문제이기도 하죠.

  자인과 라힐은 분명 제도 바깥의 인물들이고, 명백히 악을 행합니다. 도둑질을 하기도 마약 음료를 팔기도 하고, 가짜 신분증을 이용해 신분을 위장하죠. 하지만 자인을 거두어준 라힐의 행동, 요나스를 포기하지 않으려고 안간힘 쓰는 자인의 행동에서 이들에게 악한 면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걸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두 사람이 만난 곳은 놀이동산입니다 놀이동산은 자인 나이 때의 아이에게 노동보다는 놀이가 어울리는 장소입니다. 하지만 자인은 일을 찾아다닙니다. 허름한 놀이동산의 풍경은 자인의 어린 시절이 얼마나 황폐화가 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입니다. 그곳에 자인이 오는 계기를 제공했던 바퀴벌레맨 할아버지는 스스로를 스파이더맨의 친척이라고 말하죠. 바퀴벌레처럼 악착같은 생명력으로 살아남으려 발버둥 치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은 스파이더맨 같은 영웅이 아닙니다. 성경의 거미 상징처럼 악을 뽑아내는 사람들입니다. 어쩌면 악한 행동들, 훔쳐온 케이크나 위조된 신분증이 그들의 삶을 조금이라도 연명해주는 영웅 같은 존재들이라는 점은 정말 아이러니합니다.

  마치 형제처럼 보이는 자인과 요나스의 모습은, 약자들의 유대를 보여줌과 동시에 어린 요나스에게 자인이 느끼는 책임감을 드러냅니다. 어른들에게 학대당하며 자란 자인은, 아마 여동생을 지키지 못한 스스로에 대해 자책했을 자인은, 절대로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을 겁니다.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자인의 내면적 갈등과 책임감은, 요나스를 놀아주기 위해 사용하는 로봇 장난감의 시끄러운 소리 같은 것이겠죠. 요나스를 끝까지 지켜내고자 했던 것도 결국은 그런 복합적 감정이 이유이지 않을까요. 그럼에도 속임수에 넘어가 돈을 받고 아스프로에게 아이를 넘기게 되는 상황이 벌어지는 장면은, 또다시 책임의 문제를 비춰내며 끔찍한 절정의 전조를 장식합니다.

  결국 라힐을 체포되게 만든, 자인을 절망하고 분노하게 만든 것은 신분 증명에 대한 문제입니다. 신분을 증명하지 못하는 상황은 작중에서 수없이 사건과 갈등을 일으킵니다. 증명을 요구하는 물음들은 오히려 가짜 증명을 만들어냅니다. 신분 증명을 하지 못하면 잡혀가지만, 신분 증명을 하려면 돈이 필요합니다. 그건 속이기 위한 돈이고, 국가 입장에서 이것은 악입니다. 동시에 착취이기도 하죠. 관리를 위한 제도가 온전하지 못할 때, 그 불완전한 제도는 선이 되지 못한 채 악을 재생산하는 것밖에 되지 않다는 것입니다. 영화는 마지막까지 자인과 라힐의 행동을 건조하고 사실적으로 묘사하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들의 손을 조금 들어주는 결말을 보입니다. 악을 행하는 행위 자체가 단죄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인 것이죠. 살기 위한 필요악이 존재한다면 이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영화의 시선은 끝내 그런 질문을 던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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