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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쳐있는 건 아이들이 아니라 세계다 - <날씨의 아이> 본문
<날씨의 아이>는 기본적으로는 세카이계의 구성을 따른다. 세카이계는 평범한 소년과 특별한 소녀가 만나, 그들의 행위가 세계의 위기와 직결되고, 세계를 지키기 위해 소녀를 이용하려는 어른들에게 저항하는 주인공 소년의 이야기를 그린다. 소녀냐, 세계냐. 세카이계가 주인공에게 던지는 물음은 그것이고, 결정적으로 소년은 세계가 멸망하는 모습을 지켜보거나, 아니면 세계가 멸망하더라도 소녀를 지키고자 한다. 주로 소녀가 죽는 베드엔딩으로 끝나는 것도, 암울한 분위기를 깔고 들어가는 것도 전형적인 세카이계의 특징이다. 세카이계는 사춘기 소년의 질풍노도하는 내면을 있는 그대로 세계에 투영시키는 장르다.
이러한 세카이계는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데뷔작부터 천착해온 장르이기도 하다. <별의 목소리>,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뿐 아니라 <너의 이름은.>에서도 세카이계적 특징은 드러난다. <너의 이름은.>부터 신카이 마코토의 작품 방향성은 밝아지기 시작한다. 전반적인 분위기가 밝은 것뿐만 아니라, 끝내 해어지고 말던 지금까지의 주인공들과 다르게, 타키와 미츠하는 만남으로서 이야기의 막을 내린다. 이 세계관은 <날씨의 아이>에 와서 더더욱 확장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밝은 분위기뿐만 아니라 기성세대를 비판하고 젊은 세대를 옹호하는 목소리도 더더욱 확고해졌다. 이전까지 세카이계라는 장르가 추구해온 것이 기성세대 앞에 굴복하고 마는 청소년의 비극적인 이야기라면, 신카이 마코토가 구축해낸 세계는 기어코 청소년이 승리하고 그것을 한없이 밝은 분위기로 옹호하는 이야기다. 기성세대에 패배해온 지금까지의 세카이계 주인공들에게, 그들이 은유하던 젊은 세대들에게 전하는 긍정과 응원이다.
호다카는 영화 초반에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작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고 있는 모습을 보인다. 이것은 본작의 초반 플롯이 <호밀밭의 파수꾼>과 유사하다는 점에서 주제의식을 드러내는 수단이다. 호밀밭의 파수꾼에서 주인공 홀든은 가출하고 도시를 방황하며 어른들의 위선적인 세계와 직면한다. 본작의 호다카도 시골집에서 가출해 도쿄로 올라와서 홀든과 유사한 경험을 한다.
경찰의 행위는 본작이 무엇을 비판하고자 하는지 정확하게 보여준다. 본작에서 경찰은 미성년자에게 호스트 업소 일을 시키려는 행위는 방관하면서, 가정폭력(초반의 생채기나 반창고 등을 통해 유추할 수 있다)으로 가출한 소년은 잡으려 한다. 말하자면 자신들이 어른으로서 협상할 수 있는 사회에 널린 범법자들보다 협상이 불가능한 총기 소지 혐의 가출 소년이 더 위험하다는 것이다. ‘어른의 사정’ 운운하며 아이들을 협상 테이블에서 밀어내고 돈과 권력의 세계를 쌓아낸, 기성세대를 향하는 날 선 비판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호다카가 총기를 가지게 되는 부분은 개연성 면에서 비판의 여지가 없지 않지만, 그럼에도 총기는 이야기 전개에 필수적인 수단이다. 국가 권력인 경찰에 대항하기 위해서, 더 크게 보면 사회를 장악하고 호다카와 히나를 궁지로 모는 어른들에게 대항하기 위해서 총기는 필수불가결한 도구다. 총기는 호다카가 어른들의 세계와 직접적으로 맞부딪히고 강하게 저항할 때 단 두 번 발포된다. 한 번은 히나를 호스트 업소에 끌고 들어가려던 인물을 위협할 때, 또 한 번은 스가가 자신을 막을 때다. 첫 번째 총성은 히나의 인생을, 두 번째 총성은 스가의 인생을 호다카의 행동이 결정적으로 변화시켰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스가는 사람 한 명을 바쳐서 비를 그치게 할 수 있다면 자신은 동의할 거라고 말한다. 스가는 호다카를 잘 돌봐준 사람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본작에서 가장 전면에 드러나는 기성세대이기도 하다. 스가는 호다카를 동정하고 도와주기도 하는 착한 어른이라고 할 만 하지만, 경찰에게 호다카 유괴 혐의를 의심받는 상황에서는 딸 양육권을 되찾는데 호다카가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해 호다카를 내친다. 여기서 같은 세카이계 구조를 공유하는 일본 소설인 아키야마 미즈히토 작 <이리야의 하늘, UFO의 여름>을 떠올릴 수 있는데, 해당 작품에서도 전쟁이 벌어진 상황에서 주인공 아사바와 이리야를 보호해주던 착한 어른 요시노가, 자신들이 학교에서 불법적으로 살고 있다는 게 들켜 경찰에 잡힐 위기에 처하자 두 주인공을 신고하고 달아나는 모습을 보인다. 전형적인 ‘착한 어른’들을 비판하는 공통적인 요소다. 다른 점은 스가는 후반부에 가서 호다카를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예의 총성 장면 이후에 말이다. (*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이리야의 하늘, UFO의 여름> 등장인물 중 스가와 가징 닮은 캐릭터는 에노모토였겠다 싶다. 당연한 건데, 괜히 요시노를 끌고 와서 스가를 너무 단순화시켜서 해석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수정을 하기는 좀 오래된 글이라 이 정도의 주석만 남겨둔다.)
이러한 기성세대에 대한 비판적인 은유로 작중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하는 상징이 ‘날씨’다. 비가 내리는 날만이 계속되는 도쿄. 느와르 영화에서 어두운 뒷골목은 주인공의 내면에 대한 은유이기도 하다. 본작도 다소 느와르 영화에 영향을 받은 장면도 보이는데, 느와르 영화의 뒷골목을 대신하는 것이 매일매일 비가 내리는 도쿄의 날씨다. 왜 비 내리는 날씨가 나쁜 것인가? 좋고 나쁨을 규정하는 것은 어른들의 세계다. 그들의 편의다. 일하러 돌아다니기 힘들고, 청소하기 힘들고, 시장을 열기 힘들고, 결혼식은 맑았으면 좋겠고, 학교 운동회나 페스티벌도 맑았으면 좋겠다. 이것들은 전부 사회 구조적으로 만들어진 제도나 행사들이다. 그것들을 하는 게 힘든 날씨, 비 오는 날씨는 나쁜 것이다. 기성세대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들의 제도에 편입된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도 그런 가치관을 주입받는다. 호다카나 히나도 예외는 아니다. 그들도 한 때 어른들의 아래에 있었으니, 맑은 날이 좋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도쿄로 올라오는 길, 자유를 찾아 나선 길 위에서 호다카는 비가 오자 좋다고 날뛰었다. 그때, 내리는 비가 호다카는 즐거웠다. 곧 위에서 떨어진 거대한 물세례에 죽을 뻔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러한 물세례를 맞거나 하늘에서 떨어진 물고기를 발견한 인물들은 작중에서 모두 어린아이들 뿐이다. 미성년자들이다. 아파트에 사는 아기가 발견한 물고기에 엄마는 무심하고, 궁금증에 물방울 같은 것에 다가갔던 두 소년은 호다카처럼 물세례를 맞는다. 이것들은 맑음 소녀(하레온나)라고 불리는 히나가 비를 잠깐이나마 그치게 했던 반동이라고 생각된다. 비를 그치게 하는 건 기성세대를 위해, 기성세대의 사고방식에 편입되어, 또 자본주의 사회에 편입되어 살아가기 위해 돈을 벌려던 히나의 행위다. 이를 발견하거나 그에 피해를 입은 건 결국 미성년자들이다. 어른이 아닌 그들만이 그 현상에 접근할 수 있다. 이 현상은 경고다. 신화 속 용신이 제물로 ‘비의 무녀’를 바치라고 했던 것처럼, 너희들은 멋대로 탈선하지 말고 호기심도 모험심도 죽이고 어른들 말이나 들으라는 ‘하늘’의 경고다.
본작은 오래전부터 날씨를 맑게 만들기 위해 바쳐왔던 무녀들을 작중에서 언급한다. 그리고 그 무녀가 바로 히나라고 말한다. 또한 호다카가 작중에서 언급하는 용신과 동일시되는 존재임도 은근히 드러낸다. 호다카가 스가에게 용 문양 모자를 건네받고 토리이를 통과해 용에게 삼켜지는 듯한 모습이 이를 뒷받침한다. 이들은 자신들에게 씌워진 이 굴레를 벗고자 한다. 이들이 용신이고 무녀여야 하는 이유는 그저 날씨가 맑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어른들이 만든 사회의 틀에서 벗어나자 도쿄에서는 줄곧 비가 내린다. 이들을 다시 사회의 틀에 집어넣지 않으면 비는 그치지 않는다. 이들을 옥죄는 가장 큰 요소는 경제적인 부분이다. 자본주의는 기성세대가 만들고 스스로도 그에 잡아먹힌, 도쿄라는 거대한 도시를 유지하는 동력이다. 호다카도 히나도 여기서는 벗어날 수 없다. 그렇기에 아이들의 동심을 향해 거짓된 이야기를 팔아 돈을 벌거나, 날씨를 맑게 해 돈을 번다.
히나는 돈을 벌어야 했다. 그래서 어른이 되고자 했다. 어른이 되어야만 했다. 그래야지 남동생 나기를 지키고 자신도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이를 속이고 알바를 해야 하는 이유도, 결국은 거기에서 쫓겨나 유흥업소에 발을 들이기 직전까지 가는 것도 다 돈 때문이다. 하지만 닐씨를 맑게 하며 돈을 벌수록 히나는 투명해져만 간다. 자본주의는 사람을 그저 경제적인 논리로만 취급하기에 그 각각의 개개인을 조명하지 못한다. 기성세대의 가치관을 따르며 자본주의에 종속되어가자, 히나라는 개인은 점점 사라진다. 사회를 위한 제물이 되어버린다.
호다카도 돈을 벌어야 했다. 가출을 했어도 사회는 여전히 호다카를 옥죈다. 자본주의와 기성세대 가치관에 종속된 호다카는, 작은 호의에 기대 스가의 회사로 가는 길에 나기를 본다. 나기는 초등학생이면서 여자애들과 연애를 하는데, 호다카는 거기에 묘한 감정을 가진다. 어쩌면 그것은 ‘요즘 애들은 발랑 까졌어’ 같은 식의 감정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후 호다카는 나기를 선배라고까지 부른다. 경험과 능력에 나이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어린 세대에게도 배울 점은 얼마든지 있다는 것이다. 그런 호다카이기에 사라진 히나를 향해 눈물을 흘리고, 결국 테루테루보즈처럼 하늘의 운명에 매달려 사라졌던 히나를 되찾아올 수 있었다. 히나의 목에 걸린 초커를 끊음으로써 ‘운명’이라는 이름으로 강요되던 ‘맑음 소녀’라는 명칭조차 버려버린다.
히나를 구하러 가는 길, 호다카를 도와준 사람 중 한 명은 스가의 회사에서 함께 일하던 나츠미다. 나츠미는 청년세대의 고민과 딜레마를 가장 잘 표현하는 인물이다. 로망을 가진 이야기를 쓰는 꿈을 좇고 싶지만, 이력서에 스펙을 적어가며 취업을 고민해야만 하는 모습은 면접을 생각하며 끙끙대다 취재 자료를 보며 방긋 웃는 장면에서 어딘지 아프게 드러난다. 나츠미의 이름은 한자로 夏美라고 쓴다. 여름 하 자, 아름다울 미 자다. 여름처럼 뜨겁게, 또 가장 젊은 시절을 아름답게. 청춘이라고 불리는 세대의 이미지를 그대로 투영하는 듯한 이름이지만, 이런 나츠미도 결국 이력서와 면접에 가슴앓이한다. 청춘이라는, ‘푸른 봄’이라는 한자로 도저히 설명이 안 되는 세대의 상징이 나츠미다.
<날씨의 아이>는 결말에 가서, 히나와 호다카가 하늘로부터 돌아온 이후 3년 뒤의 도쿄를 비춘다. 침수된 도쿄의 모습이 드러난다. 어른들의 ‘너희 탓이 아니야’라는 말을 호다카는 강하게 부정한다. 자신들보다 어린 호다카를 보호하고자 하는 어른들의 말이 호다카에게서 책임을 뺏어가고 있었다. 호다카는 히나를 보면서, 그 어깨 위에 놓여있는 세계를 바라보면서, 자신들의 책임을 되찾는다. 이건 우리가 결정한 일이고, 우리는 분명 괜찮을 거라고 있는 힘껏 선언한다.
그렇다고 마미야 할머니와 스가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마미야 할머니가 말하는, 원래의 도쿄 지역이 물에 잠겨있었다는 이야기는 사회가 존재하지 않던 시절을 말한다. 하지만 사회가 생기고, 무녀를 통해 날씨를 자신들의 의지로 바꾸어가면서 도쿄를 만들었다. 이 이야기 자체가 하나의 은유가 된다. 날씨로 상징되는 아이들을 사회 틀 안에 밀어 넣음으로써, 그들의 자유의지를 어른들의 바람 앞에 희생시킴으로써 만들어진 자본주의의 대도시. 날씨는 원래 미쳐있었다는 스가의 말 역시 아이들은 원래 어른들의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는, 어른들이 보기엔 미쳐있어서 틀에 넣어야 하고 의무교육을 받아야만 하는, ‘사회화’가 필요한 존재로 보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날씨의 아이>라는 제목은, 결국 ‘아이’를 뜻하는 말이다. 날씨가 즉 아이라고, 아이들을 자유롭게 내버려 두라고 외치는 것이다. 아이들의 꿈과 희망을 짓밟는 어른들의 존재가,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대도시의 존재가 과연 의미가 있냐는 과감한 질문을 본작은 던진다. 그리고 청춘들에게 말한다. 기성세대에 반하는 선택을 해도 된다고. 사회를 부정해버려도 된다고. 그럼에도 너희가 행복하다면 괜찮을 수 있다고. 그게 너희에게 있어 진정한 괜찮음이라면, 너희들을 괜찮게 만들려고 하는 사회에 저항하라고. 진정한 괜찮음을 지켜내라고. 결말에 불편함을 느끼는 이들에게, 호다카의 행위가 이해되지 않는다는 이들에게도 말한다. 그들을 그냥 내버려 두라고.
신카이 마코토의 세계는 나날이 진화하고 있다. 억압당하는 현실로부터의 그랜드 이스케이프, 소년소녀의 대탈출을 환상적으로 그려낸 본작 이후 또 어떤 이야기와 어떤 세계가 신카이 마코토의 손끝에서 태어날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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