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중독글쟁이
방탄소년단에 대한 생각 본문
내가 멤버 전원의 얼굴과 이름을 아는 아이돌 그룹이 있었는지 생각해 보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사실 난 케이팝을 들으며 자라지도 않았다. 내 청소년기의 BGM은 오히려 밴드사운드와 게임 음악, 오타쿠 음악이었다. 솔로 아티스트로서의 얼굴과 이름을 아는 케이팝 아티스트들은 있지만 그룹을 알고 구분하는 건 사실 쉬운 일이 아니다. 내가 그걸 할 수 있는 서너 그룹 중에서도 음악을 들으며 목소리로 각자의 파트를 구분할 수 있는 정도는 방탄소년단이 아마 유일할 것이다.
방탄소년단의 음악을 처음 제대로 들은 건 아마 유포리아였던 것 같다. 앨범 단위로 처음 감상했던 건 윙즈 앨범이었다. 이후 맵 오브 더 소울 시리즈를 지나며 이 사람들에 대한 존경과 믿음이 생겼고, BE는 내가 정말 좋아하는 앨범 중 하나가 되었다. 이들의 음악을 처음부터 쭉 들어보다 보면 더 나아지기 위한 발버둥과 몸부림이 보이는 것만 같다. 초창기 학교 시리즈는 그들이 십대일 적에 만든 앨범들이다. 이때의 앨범들을 들으면 솔직히 그리 대단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힙합이라는 목표와 아이돌이라는 방향성 사이에서 휘청거리는 느낌이라고 할까. 그래도 타이틀로 내세운 곡들은 괜찮게 뽑았고, 이런 시기의 마침표를 찍는 게 첫 정규앨범 다크 앤 와일드다. 다크 앤 와일드 앨범은 그들이 추구하던 힙합 + 아이돌 콘셉트를 가장 명확하게 구현했다. 솔직한 목소리가 어리숙함을 숨기면서 세련되게 표현되기 시작한 지점이라고 느낀다. 하지만 이 앨범은 그다지 상업적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그렇기에 좀 더 팝적인 느낌이 강해진 화양연화 시리즈가 나오게 되었고, 이 앨범이 현재 방탄소년단 정체성의 초석이 되었다.
윙즈 앨범을 처음 들었을 적, 왜 나에게 그리도 인상적이었을까. 아마 그들 개인의 목소리가 가장 강했던 앨범이었기 때문이다. 각자의 솔로곡이 있고, 말하고자 하는 개인적/내면적 서사가 그 안에 있었다. 사실 아이돌 앨범이라는 건 대부분 콘셉트에 맞춰서 만들어지기에, 그 앨범 속 가사가 해당 그룹 멤버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하기 힘들다. 아이돌이라는 서사 속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배우들을 보는 것 같다(물론 그 완성도가 높으면 비평적 성과도 함께 가져갈 수 있다. 당연하다. 블랙핑크가 대표적인 예시다). 개인적/내면적 이야기를 하는 아이돌 앨범도 있다는 걸 나에게 처음 보여준 게, 그리고 그 결과물이 매력적이었던 게 윙즈였다. 사실 그래서 러브 유어 셀프 시리즈를 처음 들을 때는 부분적으로 인상적인 파트는 있음에도 전체가 매력적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지금도 여전히, 특별히 좋아하는 시리즈는 아니다. 나에게 이 시리즈에서는 솔직함보다 콘셉트가 더 강하게 느껴졌고, 윙즈 이후의 것을 기대하고 들었을 때는 아쉬움이 당연하게 있었다. 하지만 맵 오브 더 소울 시리즈는, 말해 뭐할까. 방탄소년단이라는 그룹이 추구해온 가장 높은 성과를 알고 싶다면 맵 오브 더 소울 7 앨범만 들어도 된다고,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최근 발매된 앤솔러지 앨범 프루프에는 멤버들이 고른 기존 앨범 수록곡이 2CD에 수록되어 있는데 일곱 멤버가 각자 두 곡씩 고른 열네 곡 중 일곱 곡이 맵 오브 더 소울 시리즈 수록곡이라는 걸 보면 그들 자신에게도 이 앨범의 가치는 크다는 걸 알 수 있다. 슈퍼스타로서의 내적인 고민/고통을 깊게 표현하면서도 각자의 개성, 팬들에게 전하는 메시지, 그들의 추억에 대한 기록까지 진솔하게 담아낸 앨범이니까. 이어서 나온 앨범인 BE는 코로나 시대의 솔직한 이야기들을 본인들의 적극적 참여로 완성해낸, 정규 넘버링은 안 달려 있어도 정규 급 완성도를 가진 앨범이다.
최근의 이야기를 해보자. 며칠 전, 방탄소년단이 한동안 단체 활동보다 개인 활동을 중심에 둔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그들의 말을 빌리면 시즌 1의 종료, 다음 시즌으로의 준비과정이라고 할까. 여기까지 오는 동안 그들의 음악적인 성과는 후퇴한 적이 없었다. 공백기 없이 십 년 가까이 활동을 이어가며, 기어코 스스로를 증명해낸 그들이다. 그들의 음악을 귀 기울여 들어왔다면, 개인 활동에 중점을 두겠다는 결정이 당연하게 보인다. 오히려 너무 늦었다. 진즉에 내렸어야 하는 결정이 회사의 사정과 코로나 시국 때문에 늦어진 것일 뿐. 군 문제도 당연히 있겠지만, 솔직히 그들에게 동반입대해서 공백기를 줄이라는 주장을 하는 일부에게는 제발 그들 개인의 입장에서 상황을 바라보라고 하고 싶다. 맏형 갈 때 됐다고 동생들까지 다 같이 가라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일뿐더러, 지금의 이건 그러한 종류의 문제가 아니다. 이미 스스로 다 이야기해 주지 않았던가. 아이돌 시스템 안에서 개인의 성장이 어렵다고. 그러니까 당분간 휴식과 성장의 시간을 갖겠다고. 오히려 나는 솔로 활동이 더 기대된다. 이미 각자의 이야기와 함께의 이야기를 병행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고 있는데, 단체 활동만 강요하는 건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오히려 그들은 이 아이돌 시스템에서 벗어난 이후 방탄소년단이라는 그룹을 새롭게 정립하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였던 건 내 착각일까.
언젠가는 적어보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머릿속에서 끄집어내 정리해 보면서, 결국 나는 방탄소년단이라는 그룹과 그 각자의 멤버들을 꽤나 좋아하게 되었구나, 하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너무 이상한 형태의 주저리가 된 것 같지만, 내가 쓰는 잡설들은 늘 그랬으니 특별히 그런 건 아니다. 그런데도 그게 신경 쓰인다는 것 자체가 좀 더 잘 다듬어서 그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는, 아마도 팬심에 가까운 마음이 아닌가 싶다. 그냥 그렇다고. 다음엔 더 좋은 글을 적어보고 싶다.